백반증

백반증은 왜 18세기 미국에서 구경거리가 되었을까요?

오늘날에는 백반증을 하나의 피부질환으로 이해하지만, 18세기 미국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피부색이 변하는 사람의 몸은 당시 사회에서 의학적 호기심의 대상이자 대중이 소비하는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헨리 모스(Henry Moss)와 메리 사비나(Mary Sabina)였습니다.

18세기 미국에서 백반증은 왜 그렇게 큰 관심을 받았나요?

당시에는 피부색이 단순한 외모가 아니라 인종과 사회적 지위를 설명하는 기준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백반증은 멜라닌세포가 소실되면서 나타나는 탈색 질환으로 이해하지만, 18세기에는 질환의 원인 자체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특히 노예제가 존재하던 사회에서 검은 피부가 하얗게 변하는 현상은 당시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인종 구분에 혼란을 주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백반증은 단순한 의학적 문제를 넘어 “피부색은 왜 다른가”, “인종은 어떻게 구분되는가”를 둘러싼 논쟁의 자료로 이용됐습니다.


‘하얀 흑인’으로 불린 헨리 모스는 누구였나요?

헨리 모스(Henry Moss)는 백반증 때문에 당시 미국 사회에서 유명한 인물이 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습니다.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38세 무렵 손에서부터 백반증이 시작됐고, 1796년 42세의 나이에 필라델피아에서 자신의 몸을 대중에게 공개했습니다.

그의 백반증은 곧 당시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의사였던 벤자민 러시(Benjamin Rush)는 흑인의 검은 피부를 일종의 질병으로 보고, 헨리 모스의 피부가 하얗게 변하는 것을 그 질병이 ‘치유되는 과정’으로 해석했습니다.

심지어 다른 흑인들의 피부색을 바꾸기 위해 사혈이나 설사 유도 같은 치료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사상가인 새뮤얼 스탠호프 스미스(Samuel Stanhope Smith)는 헨리 모스의 사례를 피부색이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용했습니다.

이러한 논의는 흑인과 백인이 같은 인류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활용되기도 했지만, 그 바탕에는 여전히 흰 피부를 정상으로 보고 검은 피부를 설명하거나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당시의 편견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백반증 환자들은 실제로 구경거리로 소비되기도 했나요?

네. 피부색이 다른 사람의 몸 자체가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전시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736년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메리 사비나(Mary Sabina)입니다.

그녀는 몸 곳곳에 흰 반점이 나타나는 부분백색증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 제작된 초상화에서는 피부의 색 차이가 강조되도록 묘사됐습니다.

이 초상화는 이후 복제돼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서도 유통됐습니다.

결국 그녀의 피부는 한 개인의 의사와는 별개로 유럽 사회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이미지이자 문화적 상품처럼 소비됐습니다.

이처럼 당시 백반증이나 백색증, 부분백색증을 가진 사람들은 때로는 의학적 연구 대상이 되고, 때로는 철학적 논쟁거리나 구경거리로 해석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작 그 사람의 삶과 감정은 뒤로 밀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과거와 지금, 백반증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설명해야 할 대상에서, 치료하고 함께 살펴야 할 질환으로 바뀌었습니다.

18세기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과학적인 방식으로 피부색을 설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시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인종에 대한 편견이 그 해석의 방향을 정하고 있었습니다. 관찰은 있었지만 환자는 없었던 셈입니다.

오늘날에는 백반증을 피부색의 '이상함'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멜라닌세포와 면역체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연구하고, 색소회복과 함께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치료를 설계합니다.

그래서 헨리 모스와 메리 사비나의 기록은 특이한 과거의 일화로만 남지 않습니다. 의학적 현상을 사회적 편견으로 해석하는 순간, 한 사람의 질환이 어떻게 낙인이나 구경거리로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백반증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럼에도 질환을 가진 사람을 먼저 한 명의 환자이자 개인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References

  • Craiglow BG. Vitiligo in Early American History: The Case of Henry Moss. Arch Dermatol. 2008

  • Odumosu T. Burthened Bodies: the image and cultural work of “White Negroes” in the eighteenth century Atlantic world. American Studies in Scandinavia. 2014

  • Martin CD. The White African American Body: A Cultural and Literary Exploration. Rutgers University Press. 2002

  • Curran AS. The Anatomy of Blackness: Science & Slavery in an Age of Enlightenment.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11

배정민

피부과 전문의 · 강남점

진심 어린 진료와 꾸준한 연구로, 백반증 환자분들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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